셈루이

 
 

어떻게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제가 뮤지션이 된 건 우연이었어요. 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그러다 재미로 두 개의 싱글을 냈는데 이게 우연히 제 직업이 됐어요. 음악은 항상 제 삶의 일부였고, 제가 3-4살 때부터 시작한 교회 성가대는 제게 결정적인 기회였죠. 제 인생에서 음악은 표현이나 소통의 수단이 아닐 때가 있었어요. 항상 음악을 즐기긴 했지만, 진짜 제 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으니까요. 만약에 제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 이상으로 저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걸 몰랐을 거예요.

첫 번째 앨범을 혼자서 프로듀싱 하는 것은 어땠나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험이었어요.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방법으로 음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을 거예요. 삶에서 어떤 특정한 시간과 연결되는 음악이 있어요. 그게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경험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요. 마치 기념품처럼요. 특정한 노래가 떠오르고, 이 음악은 당신을 스쳐 지나가죠. 당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기억날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제 삶에 적용하는 것 대신 저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저는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 삶에 대해 표현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매우 자유로웠어요. 제가 앨범 작업을 할 때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그 격렬한 감정을 3분 안에 압축하는 게 치료법이었죠. 모든 문제가 머릿속에만 있으면 이걸 표현할 방법이 없잖아요. 마지막에 모든 것을 한 음악에 넣고 그걸 들어보면 그 격렬했던 감정들을 모두 흘러가게 할 수 있어요. 이를 몸에서부터 흘러나오게 하는데 정말 자유로운 일이죠.

어떻게 창의적인 독자성을 발견하나요?

어떤 종류의 예술이라도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가장 진솔한 방식으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신을 발견하는 저의 방법은 꼬리표를 떼내고 어떤 것이든 경험하고, 어떤 형식의 예술이든 소비하는 거예요. 저는 많은 장르의 음악을 들어요. 그 시간에 제 느낌과 딱 맞는 음악이면 그게 어떤 것이든지요. ‘내 이미지는 뭘까?’ 혹은 ‘내 브랜드는 어떨까?’와 같은 질문들로 너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자신을 찾을 수 있어요. 나는 그저 나인 거죠. 이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어요. 저는 여전히 어떤 게 제 음악을 특별하게 만들고, 무엇이 저를 만들고, 무엇이 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만드는지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계속해서 생각을 열어두고 있는 한, 계속 변화할 수 있고 그게 스스로 더 나은 감각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Laneway 페스티벌에서의 첫 경험은 어땠나요?

아주 좋았어요! 저는 Chet Faker(호주 출신의 뮤지션, 최근 본명인 Nick Murphy로 활동명도 바꿨다.)의 엄청난 팬이에요. 뷔페에서 저는 시리얼 새우를 담으려고 하고 있었고, 그는 제 옆에 서있었어요. 제가 집게를 놓아둘 때 그가 손을 뻗었고, 오른쪽을 쳐다봤을 때 수염이 있는 Chet Faker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는 정확히 제 얼굴에서 2인치 떨어진 곳에 있었고, 저는 기절할 뻔했어요. 그리고 저는 Nao(영국 출신 뮤지션)의 음악도 좋아해요. 그녀의 보컬 톤, 가사, 우아함, 무대 매너는 정말 멋지죠. 백스테이지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제게 샴페인을 줬고 마찬가지로 기절할 뻔했어요. 그녀는 사랑스러운 영국 악센트로 “이리로 와서 앉아요”라며 이야기했고, 20분 정도 저희는 대화를 나눴죠. 그녀는 제 우상이에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게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어요. 마치 제가 유명한 아티스트가 된 듯한 느낌이었죠. 그리고 제 공연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는데 아시다시피 페스티벌 중요 출연진은 저녁 11시쯤 오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제 밴드에게 “우리는 최선을 다할 거지만 관중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했죠. 근데 무대부터 음향 텐트까지 공간 전체가 관중으로 가득 찼었어요. 저는 정말 울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아주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지난 몇 달간 서울에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동안 무엇을 이루고 싶나요?

싱가포르에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고, 주목을 받기 위해 경쟁할 필요도 별로 없어요. 만약 한 개의 앨범을 발매하면 음악 산업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1-2년 정도 지속할 수 있죠. 그래서 삶에 안주할 수 있고, 빠르게 게을러져요. 저도 같은 것을 느꼈고요. 그러다 서울에 왔는데 이곳의 음악 씬은 포화상태였죠. 모든 사람이 재능이 있었어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누군가도 언젠가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만에 빠질 수도 없어요. ‘이 그룹은 다음 달에 데뷔를 하고, 나는 지금 뭔가를 내놓아야 하고, 내가 이제까지 한 것 중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마치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죠. 어떤 측면에서는 경쟁 과열 때문에 건강하지 못하지만, 반면에 그들은 잘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굉장히 강해요. 배우려는 의지가 있고 항상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길 원하죠.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저는 제 자신을 더 향상시켜야 했어요.

 
 

뮤지션으로서 직면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건, 제 나이에 모든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갖고, 일정한 급여를 받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싱가포르에서 수주 생산 방식(Build To Order)의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겐 규칙적인 패턴이라는 게 없죠. 9시부터 5시까지 고정적인 스케줄도 없고, 일하는 시간도 엉망이고, 학사학위도 없어요. 어떤 때는 싱가포르에 있고, 또 어떤 때는 몇 달간 떠나 있죠. 어느 한 달은 성공적이었다가 다음 달에는 파산하기도 해요. 이런 점들이 제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았다면, 아마 저는 다른 것을 추구했을 지도 몰라요. 제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은 친구들을 만날 때 깨달았어요.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고, 이런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할 부분도 따른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죠.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젊은 예술가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들은 할 수 있어요. 그저 많이 두려울 뿐이에요. 우리는 항상 외모, 평가,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는데 그런 방식들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 최악의 비평가에요. 만약 제가 제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있는 제 노래를 올리지 않았다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만나봤을 수도 있고, 서울에 못 왔을 수도 있어요. 저는 아마 그냥 학교와 집을 오가며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 한순간을 위해 그냥 스스로가 친 울타리를 걷어내고, 발표하고, 그대로 한 번 놔둬봐요. 만약에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지 않는다면, 자신이 얼마나 별로인지 혹은 얼마나 대단한지를 모를 거예요. 물론 가끔은 평가라는 것이 정말 안 좋을 수도 있죠. 어떤 사람들은 제 목소리가 매우 거슬린다고 하고, 소녀가 죽어가는 소리 같다고 하거나, 고양이가 길거리에 끌려가는 소리 같다고도 하고, 너무 많은 오토튠을 쓴다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비평은 당연히 받는 거고 피할 수 없어요. 만약 재능이 있고, 좋은 의도가 있다면 보일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믿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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